선수의 함정 지금 지나가는 이날, 오늘

李 선수! 선수? 아마 운동대회 참가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론사에 들어와 대다수 기자들이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 아닐까 싶다. 선수(選手)... 운동경기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뜻 외에도 우리는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가리켜 선수라고 부른다. 듣기에 나쁜 말은 분명 아니지만, 경계해야할 저의(底意)는 있다.

함정(陷穽)은 속보경쟁에 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누가 1분 1초라도 먼저 기사를 쓸까. 시청자와 독자들이 마다할 일은 아니다. 굳이 채근(採根)하지 않아도 따끈따끈한 기사를 인터넷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신속 배달해주니 말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은 단골 재료고 섹스나 돈은 인기 양념이다. 다만, 살아있는 정권 비리 의혹 세트 메뉴는 귀한 재료가 필요하며, 일반인에게는 잘 팔지 않는다.

법조출입을 하던 말진 기자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이런 얘기가 오가곤 했다.“그 기사 봤어? 근데 도대체 어디서 확인된 거야?” “빨대가 있다는데?”

‘그 빨대는 빨리고 싶은 빨대인가. 빨아먹는 빨대인가. 씻은 빨대인가’

“그 부분은 수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오보 쓰지 마십시오”

기자들에 둘러싸인 검찰청 차장검사와 부장검사, 그리고 기자들은 스무고개를 즐겨한다.

의혹 < 혐의 < 기소 < 재판 < 판결 < 유죄확정 순으로 더 중요한 뉴스로 다룬다는 언론 선진국의 사례를 거론해본다면 우리나라는 180도 반대다. 의혹이 있을 때 단독이 되고 특종보도가 되기 때문이다. 추측과 가정도 빠지면 서운하다. 물론 취재과정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계해야할 부분은 오보이고 정보의 과잉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말진 기자들이 잡진, 일진이 됐을 때는 달라질 거라 믿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모 정당 모임 뒤풀이 때 일이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던 기자들은 번갈아가며 들어오는 의원들의 노래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생겼고, 분위기는 달아올라 모니터에는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하나, 둘, 셋... 늘어났다. 기자도 열창한 뒤 100점이 나왔다는 환호성과 내라는 성화에 못 이겨 그의 자제이신 율곡 이이 선생님이 그려진 5천원을 건넸다. 단위는 5로 같다. 문제는 금액이 늘어나는데 있었다. 물론 100단위를 넘지 않았고 노래방에 있던 사람 수도 10명을 훌쩍 넘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이 돈을 어디에 써야할지 괜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결국 적지만 우리 돈은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는 서울 시내 한 어린이병원에 기부했다. “내게는 업보(業報)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작은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모여 항아리를 채우듯 작은 악이 쌓여 큰 죄악이 된다.” 법구경(法句經)에 나오는 부처님말씀이다. 행동과 습관을 소중히 여기는 선배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참 즐거운 선배이고 싶다. 현장에 첫발을 내딛은 후배들에게 엔도르핀과 무언의 감흥을 주는 선배이고 싶다. 지친 모습은 괜찮지만, 지루한 모습이고 싶지는 않다. 오래가져갈 직업이라면 열심히만 하지 말라는 혜민 스님의 말씀에 공감한다. 로봇처럼 척척 찍어내는 기사를 원하는 곳이라면 떠나야 한다. 육하원칙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기사를 만들어 뽑아 주는 자동기사작성기나 나오지 말라고 누가 감히 장담 하겠는가.

무엇보다 후배를 무서워할 줄 아는 선배가 되어야겠다. 적어도 언론사라면 이병, 일병 때 고생하고 상병 때 일할 줄 알다가 병장되면 퍼지는 곳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힘을 내서 해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위 내용은 방송기자 2012년 여름호 특집 '선배 그 어려운 이름' 섹션에 기고한 글로 지난 6월 21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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